기법, 채색, 분위기…작가 퀸지디의 '유니크한 그림'

입력 2022-11-18 21:10   수정 2022-11-19 09:29


많은 화가가 도시의 고독과 현대인의 내면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를 타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여성, 새벽녘을 연상시키는 보라색이 그런 분위기를 낸다.

하지만 화풍만큼은 그 어떤 작가와도 다르다. 금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독특한 색채, 극화체 만화나 옛날 극장 간판 그림을 연상시키는 사실적이면서도 독특한 얼굴 표현, 감각적인 인체 표현과 섬세한 옷차림 묘사…. 경기도 하남 갤러리베누스에서 열리고 있는 ‘호모 루아’(Homo Ruah) 전시에는 이 작품처럼 독특한 화풍의 그림이 즐비하다.

전시작들에는 한국화와 일본화의 채색기법을 비롯해 서양화의 조형 어법 등 다양한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라피티와 벽화의 요소도 있다. 젤 스톤과 돌가루, 커피 가루 등을 캔버스에 두껍게 올린 뒤 질감을 살려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특정 기법이나 화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작가인 퀸지디(Quinnji D)의 이력은 화려하다. 20년 전쯤에는 오트 쿠튀르(하이엔드 패션) 업계에 종사하며 많은 톱스타의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당시 흥행 1위였던 영화 ‘약속’(1998)에 나오는 성당 장면에서 전도연 배우가 입은 원피스형 드레스, 전도연 배우가 청룡영화제에서 입은 드레스가 대표적이다. 스타들이 지금처럼 명품 회사에서 드레스를 협찬받지 않고 오트 쿠튀르 부티크에서 옷을 직접 맞춰 입던 시절이었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계간지에 단편소설을 실은 적도 몇 번 있다.

10여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지난해부터다. 불과 1년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해 총 10번의 전시를 치렀다. 작품을 그리는 속도도, 전시 횟수를 늘려가는 속도도 이례적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34점 중 23점이 올해 신작이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작품 제작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런 다작(多作)은 더욱 놀랍다. 캔버스 위에 돌 질감의 소재들을 올려 굳힌 뒤 여기에 펄(pearl) 분채와 아크릴 물감으로 수없이 많은 터치를 더한다. 다작의 비결을 묻자 작가는 “휴일도 없이 하루 14시간씩 그린다”고 했다.

덕분에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도 화풍이 각각 다르다. ‘내가 듣는 내 숨소리’ 연작은 내면에 대한 탐구를, ‘낮은 톤의 플로우’ 연작은 단순화한 인물들의 몸짓을 통한 분위기 표현을, ‘Monologue’ 시리즈는 인물 안의 다른 성격 요소들을 주제로 한다.

이런 작업이 가능한 건 그가 ‘미술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퀸지디라는 생소한 예명은 작가가 중성적인 서양 이름인 퀸(Quinn)과 자신의 이니셜을 합쳐 만들었다. 그는 “성별과 국적, 나이 등을 떠나 작품 하나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화풍을 조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 작가의 화풍이 워낙 독특한 데다 아직 활동 경력이 짧은 만큼 “작품에 다소 부조화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는 관객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매력이 있는 그림”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며 그의 성장 속도를 높게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작가는 “케이옥션 쪽에서 요청이 들어와 내년 초 몇 작품이 온라인 경매에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전시는 다음 달 3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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